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대사적 연결 고리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는 주로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핍, 반복적 행동, 감각 민감성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신경발달장애로,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유전적 요인, 뇌 발달 이상, 환경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소화기계 문제와 대사 장애가 자폐 증상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이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많은 자폐 아동이 복통, 설사, 변비, 식욕 부진, 음식 편식 등의 소화기 문제를 호소하며, 이는 행동 문제를 악화시키거나 집중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신경계와 상호작용해 뇌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장-뇌 축(gut-brain axis)’ 이론이 제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식이요법, 특히 글루텐(Gluten)과 카제인(Casein)의 제거가 자폐 아동의 행동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확대되고 있다.
글루텐과 카제인, 왜 문제가 되는가?
글루텐은 밀, 보리, 호밀 등에 포함된 단백질이고, 카제인은 우유 및 유제품에 포함된 주요 단백질이다. 일부 자폐 아동은 이 두 성분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결과 ‘펩타이드(peptide)’ 형태의 미분해 단백질 조각이 혈액을 통해 뇌에 전달되어 신경 전달물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이 있다. 이는 마치 아편계(opioid-like) 작용을 일으켜 인지 능력, 감정 반응,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오피오이드 과잉 이론(Opioid Excess Theory)’**으로 불리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증상과 특정 음식 성분 사이의 연결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의 핵심이다. 실제로 소변 검사에서 특정 펩타이드의 농도가 자폐 아동에게서 높게 나타났다는 일부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결과는 보편적인 진단 기준으로 인정받기에는 아직 충분한 과학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보호자와 치료사들은 글루텐·카제인 프리(GFCF: Gluten-Free, Casein-Free) 식이요법을 시도해 보고 있으며, 일부 사례에서는 명확한 행동 변화와 감정 조절 능력 향상이 보고되고 있다. 특히 과잉 행동, 공격성, 수면 장애,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 개선이 있었다는 보호자 보고가 다수 존재한다.
과학적 근거와 논란: 효과는 개인차?
글루텐 및 카제인 프리 식이요법의 효과를 둘러싼 과학적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부 임상 연구에서는 GFCF 식단을 일정 기간 유지한 자폐 아동에게서 행동 개선, 언어 사용 증가, 사회적 반응 향상 등의 긍정적인 변화가 보고되었다. 예를 들어, 2002년 노르웨이에서 수행된 무작위 대조 실험에서는 1년간 식단을 조절한 결과, 자폐 아동의 전반적인 행동 지표가 향상되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반면, 대규모 표준화된 연구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거나, 단기적일 수 있다는 결론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2010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지원 연구에서는 GFCF 식단이 자폐 아동의 행동에 특별한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자폐 아동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자폐 아동 개개인의 대사 상태, 장 기능, 유전적 요인 등에 따라 식이요법의 반응 정도가 다르며, 이는 식단 조정이 ‘모든 아동에게 효과적’이라는 단정적 결론을 내리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치료 접근의 일환으로써, 부작용이 크지 않다면 전문가의 감독 하에 신중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식이요법 적용 시 고려할 점
GFCF 식이요법을 자폐 아동에게 적용할 때는 몇 가지 유의점이 필요하다. 첫째, 영양 불균형을 방지해야 한다. 밀가루와 유제품은 많은 식단에서 기본 재료이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면 칼슘, 비타민 D, 단백질, 식이섬유 등의 섭취가 부족해질 수 있다. 따라서 식단 구성은 영양 전문가와의 협력을 통해 균형 있게 설계되어야 한다.
둘째, 식이요법은 갑작스럽게 변경하지 말고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아동의 식습관과 기호를 고려하여 천천히 대체 식품으로 전환하고, 거부감을 줄이며 새로운 식단에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정기적인 경과 관찰과 기록이 필수이다. 변화 전과 후의 행동, 수면 패턴, 소화 상태 등을 세심히 기록함으로써 실제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넷째, 보호자와 치료사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학교 급식, 외식, 간식 등 다양한 상황에서 식단 관리가 필요하며, 식이요법이 가족에게 심리적·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계획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료적 조언 없이 무작정 식단을 변경하는 것은 아동의 성장 발달에 해가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의 지도하에 시행되어야 한다.
디스크립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의 행동 개선을 위해 글루텐과 카제인을 제거하는 식이요법이 주목받고 있다. 일부 아동은 이들 단백질을 소화하지 못해 신경 전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론이 있으며, 실제 임상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보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적 효과는 개인차가 크고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어, 전문가의 감독 하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